티스토리 뷰

아이들을 잘 가르치면 좋은 클럽이 될까요? 제 경험상 꼭 그렇지 않습니다. 진학을 잘 시킨 클럽이 좋은 클럽으로 통하는 게 지금 유소년 축구의 현실입니다. 유소년 클럽을 직접 운영하면서 "이게 선수 발전을 위한 구조인가, 아니면 사업을 위한 구조인가"라는 질문을 매일 되뇌게 됩니다.



운동장 하나 못 빌리는 현실 — 구조적 한계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초등 고학년 아이들에게 8대8 경기를 시키려면 제대로 된 구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8대8이란 풀사이즈(11대11) 경기로 넘어가기 전 단계에서 전술 이해도와 공간 활용 능력을 키우기 위해 권장되는 소사이드게임(SSG, Small-Sided Game)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작은 공간에서 더 많은 터치와 판단을 반복하게 하는 훈련 포맷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냉혹합니다. 시·군 소유 구장을 빌리려 하면 첫 번째 벽부터 막힙니다. 수익사업 목적의 단체에는 대여가 불가하다는 규정 때문입니다. 국내 초등 클럽팀의 95% 이상이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어 영리 목적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공공 구장 사용이 거절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시간대 겹침입니다. 학교 하원 후 오후 시간에만 훈련이 가능하다 보니 인근 클럽들과 구장 예약이 충돌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지도자끼리 협력할 만도 한데, 실제로는 민원과 신고가 오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동업자 의식이 전혀 없는 겁니다.

세 번째는 소비자 선택의 자유가 역설적으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구조입니다. 자유로운 이적이 가능하다 보니, 아이를 잘 가르치는 클럽이 아니라 좋은 학교에 진학시켜 주는 클럽이 살아남습니다. 이 역순환이 반복되는 한, 유소년 시절의 기본기 교육은 뒷전이 됩니다.

  • 공공 구장 대여 불가 — 개인사업자 클럽은 영리 목적으로 분류됨
  • 오후 시간대 구장 충돌 — 클럽 간 신고·민원 발생
  • 진학 실적 중심의 클럽 평가 — 기술 교육보다 입시 결과가 우선시됨
  • 자유 이적 제도의 역설 — 선수 성장보다 클럽 홍보가 핵심이 되는 구조
요약: 공공 인프라 접근 차단, 클럽 간 경쟁 구도, 진학 실적 중심 평가가 맞물려 유소년 축구의 기초 교육 환경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초등·중등·고등이 따로 노는 이유 — 시스템 비교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겉으로는 '유소년 시스템'이라는 말을 쓰지만, 실제로는 초등·중등·고등 단계가 완전히 단절된 채 운영됩니다. 아이가 한 단계를 올라갈 때마다 전혀 다른 축구 철학과 전술 언어를 새로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목격한 일입니다.

여기서 전술 언어란 압박의 위치, 빌드업(Build-up) 시작 지점, 포지셔닝 원칙처럼 선수 간 약속된 움직임 체계를 의미합니다. 빌드업이란 골키퍼나 수비수에서부터 공을 연결해 전방으로 전개하는 조직적 패스 연결 과정입니다. 이 언어가 단계마다 달라지면 선수는 매번 '축구를 처음 배우는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일본의 경우는 다릅니다. 출처: 일본축구협회(JFA)에 따르면 일본은 유소년 단계부터 성인팀까지 일관된 기술 철학(테크니컬 가이드라인)을 협회 차원에서 관리합니다. 등록 선수 규모도 약 80만 명 이상으로 한국의 수 배에 달합니다. 선수층의 두께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 프로축구 K리그의 경기 스타일도 이 문제와 연결됩니다. 거친 압박(High Press)이 너무 강조되다 보니 유소년 지도자들도 그 기준에 맞춰 훈련을 설계합니다. 여기서 하이프레스란 상대 진영에서부터 강하게 볼을 빼앗으려는 전방 압박 전술입니다. 단기 성적에는 효과적이지만, 기술 습득 시기인 유소년에게 반복 적용하면 창의성과 볼 컨트롤 능력 발달을 방해합니다. 호날두나 메시가 태클과 반칙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축구를 배웠다면 지금의 선수가 되었을지 의문입니다.

출처: 대한축구협회(KFA)도 기술 교육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그 지침이 실제 클럽 훈련에 얼마나 반영되는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협회가 선진국 축구 시스템을 참고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구조와 철학보다는 표면적인 프로그램만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약: 단계별 단절된 축구 교육과 성적 위주의 하이프레스 문화가 결합되어, 한국 유소년 선수들은 창의적 기술보다 즉각적인 전투력만 키우는 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한국 유소년 축구의 문제점
유소년 축구의 진짜 문제

그래서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 — 개선 방향

제가 지도자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공공 인프라 접근 제한입니다. 개인사업자 클럽이라도 비영리 교육 목적의 훈련에 한해서는 공공 구장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필요합니다. 이것 하나만 해결돼도 클럽 간의 불필요한 갈등이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봅니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단계 간 커리큘럼 연속성입니다. 초등에서 익힌 포지셔닝 원칙이 중등에서도 이어지고, 고등 단계에서 전술적으로 심화되는 수직적 교육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단계마다 지도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는 구조에서는 선수 발전의 연속성이 생길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클럽 평가 기준의 전환입니다. 진학 실적 대신 선수 개개인의 기술 성장 데이터, 훈련 참여율, 부상 발생률 같은 지표로 클럽을 평가하는 방향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리 잡히면 '이기는 클럽'보다 '잘 가르치는 클럽'이 살아남는 환경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대한축구협회의 역할입니다. 선진국 축구 시스템을 참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나라의 구조, 조직 운영 방식, 재원 배분 체계까지 파악해 한국 현실에 맞게 설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관광 수준의 벤치마킹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공공 구장 비영리 훈련 목적 사용 허용 제도화
  • 초·중·고 단계를 잇는 협회 주도 커리큘럼 연속성 확보
  • 진학 실적 대신 기술 성장 지표 기반의 클럽 평가 체계 도입
  • 협회의 해외 시스템 벤치마킹을 구조·철학 수준까지 심화
요약: 인프라 접근 제도 개선, 단계 간 교육 연속성 확보, 클럽 평가 기준 전환,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움직일 때 유소년 축구 시스템은 실질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소년 축구 클럽은 왜 공공 구장을 못 쓰나요?

A. 국내 초등 클럽팀의 대부분이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어, 시·군 공공 구장 대여 규정상 수익사업 단체로 분류됩니다. 비영리 교육 목적임을 증명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보니 원천 차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도 개선 없이는 현장 지도자들이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Q. 한국 유소년 축구가 일본보다 뒤처지는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A. 등록 선수 수와 시스템의 연속성 차이가 가장 큽니다. 일본은 협회 차원의 기술 철학이 유소년부터 성인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반면, 한국은 단계마다 다른 지도자가 다른 방식으로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는 구조입니다. 거기에 성적 위주의 하이프레스 문화가 더해져 기본기 교육 시간 자체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Q. 진학 잘 시키는 클럽이 왜 문제가 되나요?

A. 진학 실적이 클럽의 유일한 평가 기준이 되면, 지도자는 아이의 기술 발전보다 단기 성과를 낼 수 있는 전술 훈련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창의적인 플레이어가 아니라 포지션 하나만 잘 소화하는 규격화된 선수가 양산됩니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대표팀 수준까지 영향이 올라갑니다.

 

Q. 8대8 경기는 왜 중요한가요?

A. 8대8 소사이드게임(SSG)은 11대11 풀사이즈로 넘어가기 전 단계에서 공간 판단력과 패스 선택 능력을 집중적으로 키울 수 있는 포맷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더 자주 공을 터치하게 되기 때문에, 기술 습득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미 표준화된 방식이지만, 한국은 구장 부족으로 이 단계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클럽이 많습니다.

 

결론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 선수 발전을 위한 것인지, 개인 사업자의 수익을 위한 것인지. 제가 매일 현장에서 마주치는 질문입니다. 구장 하나 빌리지 못하고, 이웃 클럽과 신고 공방을 벌이고, 진학 실적으로만 평가받는 구조 안에서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와 각 지자체가 현장의 목소리를 실제 정책으로 연결할 의지가 있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라고 봅니다. 선진국 시스템을 참고하되, 구조와 철학을 가져와야지 외형만 가져오는 방식은 이미 수차례 실패했습니다. 지금 유소년 구장 한 곳이 확보되는 것이 10년 후 대표팀 경쟁력 하나와 직결된다는 인식부터 필요합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ansung9/224363901255